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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랑스토리

일기/안도현

하상욱 2019. 6. 19. 00:24

오전에 깡마른 국화꽃 웃자란 눈썹을 가위로 잘랐다
오후에는 지난여름 마루 끝에 다녀간 사슴벌레에게 엽서를 써서 보내고
고장 난 감나무를 고쳐주러 온 의원(醫員)에게 감나무 그늘의 수리도 부탁하였다
추녀 끝으로 줄지어 스며드는 기러기 일흔세 마리까지 세다가 그만두었다
저녁이 부엌으로 사무치게 왔으나 불빛 죽이고 두어 가지 찬에다 밥을 먹었다
그렇다고 해도 이것 말고 무엇이 더 중요하다는 말인가
- 일기/안도현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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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화꽃 눈썹은 어떻게 생겼을까?
사슴벌레에겐 어떤 언어로 엽서를 써야 할까?
여기에 등장하는 의원은 누구일까?
감나무 그늘의 수리비는 도대체 얼마를 줘야 하나?
왜 기러기는 하필 일흔세 마리일까?
저녁이다. 
저녁이 부엌으로 사무치게 왔고
그리고 비로소 사내는 수저를 든 것이다.
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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