파랑스토리
풀/김수영
하상욱
2019. 6. 7. 09:21
풀이 눕는다
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
풀은 눕고
드디어 울었다.
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
다시 누웠다.
풀이 눕는다
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
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
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
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
발목까지
발목까지 눕는다
바람보다 늦게 누워도
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
바람보다 늦게 울어도
바람보다 먼저 웃는다
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
- 풀/김수영
<1968.5.29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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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이 풀은, 아무리 보아도
그렇게 숱하게 보아왔어도
시들지 않는 걸까.
지루하지 않고
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걸까.
더 생생하게 웃고 있는 걸까.
왜 이 한여름 아침에
이 시가 생각났는지.
바람 때문인가 보다.
어디에서 불어오고 있을 비바람 때문인가 보다.
- 전에 썼던 블로그에서 옮김